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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보시2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2)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1)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1)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3)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4)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5)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1) 재무상 윌리엄 에딩턴을 통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즈음, 잉글랜드는 나바르의 국왕 악인왕(Charles the Bad) 샤를 2세를 우군으로 맞이하였다. 그는 나바르 왕국의 군주이면서, 노르망디에 여러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 인근에도 부유한 영지를 가지고 있어 오히려 에드워드 3세보다도 프랑스 왕위를 자격이 충분.. 2022. 6. 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3) 에드워드와 함께 영국 해협을 넘어 노르망디로 향하는 잉글랜드 군대는 기사, 창기병, 궁수(기마 궁수와 보행 궁수) 및 단검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당시 잉글랜드 중기병은 금속 고리가 연결된 형태의 '미늘 갑옷'과 원뿔형 투구, 팔꿈치 보호대와 발 보호대로 무장하고 있었다. 반면 필리프 6세의 기사들은 어깨와 팔다리를 철판으로 보호하고 주둥이처럼 튀어나온 얼굴 장갑이 개폐형으로 되어 있는 헬멧(bascinet)을 착용하였다. 프랑스 기사의 판금 갑옷에 비하면 잉글랜드 군의 장갑은 확실히 구식이었다. 중기병 운용에는 막대한 비용과 물자가 요구되었는데, 중기병 한 기를 운용하기 해서는 무장한 시종 두 명과 세 마리의 말(전투용 군마, 장비 운반용 말, 비전투 시 승용마)이 필요했다. 세 마리의 말을 운용할..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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