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2년 10월 17일, 톨벗(John Talbot, 1st Earl of Shrewsbury)은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메도크(Médoc)에 상륙했다. 톨벗의 군대가 노르망디에 상륙할거라 예상했던 프랑스는 완전히 허를 찔렸다. 보르도 사람들은 사전에 약속한대로 봉기하여 프랑스 수비대를 쫓아내고 성문을 열었다.
10월 21일, 잉글랜드군은 보르도에 입성했다. 그 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는 톨벗의 넷째아들 리슬 자작과 3,000명의 군사가 톨벗과 합류하였다.
※ 리슬 자작(1st Viscount Lisle)이름은 아버지와 똑같은 존(John Talbot)이다.
1453년 봄, 샤를 7세는 보르도를 목표로 북동쪽, 동쪽, 남동쪽 세 방향에서 기옌을 침공하였다.
7월 동쪽에서 전진하던 프랑스군은 도르도뉴(Dordogne)강변의 리부른(Libourne) 인근에 있는 카스티용(Castillon)을 포위하였다. 카스티용 주민들의 절박한 구원 요청을 받은 톨벗은 카스티용으로 이동하였다.
카스티용을 포위한 프랑스군의 병력은 약 9,000명이었다. 이들은 카스티용 대포의 사정거리 밖에 요새화된 포 집결지를 만들었다.
길이가 대략 800m, 폭은 약 180m의 포 집결지는 도르도뉴강과 평행하게 놓였다. 집결지의 북쪽 면은 도르도뉴강의 지류인 리두아르(Lidoire) 강으로 보호되었으며, 다른 면에는 깊은 참호와 흙벽이 건설되었다. 흙벽은 다시 나무로 보강되었다.
7월 16일 톨벗은 기옌 분견대를 포함하여 최대 1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보르도에서 나왔다. 톨벗은 보병으로 구성된 본대는 뒤따라오게 하고, 자신은 500명의 중기병(맨 엣 암즈, men-at-arms)과 800명의 기마 궁수만 데리고 먼저 리부른에 도착했다.
이튿날 새벽, 톨벗은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인근 수도원에 있던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전멸시켰다. 이어 토머스 에브링엄 경을 파견하여 포 집결지에 대해 알아보게 하였다.
포 집결지에 대한 정찰 후 자신의 본대를 기다리던 톨벗에게 전령이 도착했다. 그는 포 집결지의 동쪽에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프랑스군 전체가 철수하고 있다고 판단한 톨벗은 즉시 포 집결지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다.
"톨벗!", "성 조지!"
잉글랜드와 가스코뉴 병사들은 "톨벗!", "성 조지!"를 외치며 프랑스 진영을 향해 돌격했다. 프랑스군의 포는 불을 뿜었고 많은 잉글랜드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잉글랜드군은 참호를 돌파하고 흙벽을 넘어 포 집결지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하였다.
토머스 에브링엄 경을 비롯한 소수는 흙벽을 넘어 집결지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에브링엄은 흙벽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포에 맞아 죽었다.
양군이 한 시간 가량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별안간 리두아르강 건너편에서 브르타뉴 군이 나타났다. 브르타뉴군은 곧 잉글랜드군의 우현과 충돌하였다. 이미 열세인 상황에서 브르타뉴 군까지 가세하자 잉글랜드 군은 결국 도르도뉴강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톨벗과 그의 아들은 강을 건너 퇴각하는 잉글랜드군을 엄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규합하였다. 이 때 톨벗이 타고 있던 말이 총에 맞아 쓰러졌고 그는 말에 깔리고 말았다.
말 아래 깔려있던 톨벗을 보고 프랑스 궁수 하나가 접근했다. 궁수 미셸 페뤼냉(Michel Perunin)은 도끼로 톨벗의 목을 내리쳤다. 톨벗의 잉글랜드군은 완전히 궤멸되어 대부분 전사하였다. 카스티용 전투는 잉글랜드의 패배로 끝났다.
9월 말이 되었을 때, 보르도가 홀로 프랑스에 맞서고 있었지만, 도시는 포위되었고 지롱드 강은 봉쇄되었다. 보르도 시민들은 승리의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1453년 10월 19일 결국 보르도는 프랑스군에 항복하였다. 보르도가 항복하면서 기옌 지방은 완전히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이 순간 백년전쟁은 끝났다.
아래는 Youtube 채널 'HistoryMarche'에서 만든 카스티용 전투 영상입니다.
'백년전쟁 1337~1453' 이전 목록
*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 - 1 2
*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 1 2 3 4 5
*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 1 2 3
* 백년전쟁 1337~1453 (현명왕 샤를) - 1 2 3 4
* 백년전쟁 1337~1453 (잃어버린 평화) - 1 2
* 백년전쟁 1337~1453 (잉글랜드의 기회 - 1399~1413) - 1
* 백년전쟁 1337~1453 (헨리5세와 아쟁쿠르 전투 - 1413~1422) - 1 2 3 4 5
* 백년전쟁 1337~1453 (프랑스 섭정 베드퍼드 공작 - 1422~1429) - 1 2 3 4 5
* 백년전쟁 1337~1453 (오를레앙의 마녀 - 1429~1435) - 1 2 3 4
* 백년전쟁 1337~1453 (비보 - 1435~1450) - 1 2 3 4
* 백년전쟁 1337~1453 (암울한 싸움 - 1435~1450) - 1
※ 본 포스트는 책 '백년전쟁 1337~1453'를 읽고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이 포스트를 끝으로 '백년전쟁 1337~1453'에 대한 요약을 마칩니다.
'⚔️ 전쟁 > 백년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년전쟁 1337~1453 (암울한 싸움 - 1450~1453 1) (2) | 2024.02.26 |
---|---|
백년전쟁 1337~1453 (비보 - 1435~1450 4) (2) | 2024.01.24 |
백년전쟁 1337~1453 (비보 - 1435~1450 3) (1) | 2024.01.23 |
백년전쟁 1337~1453 (비보 - 1435~1450 2) (0) | 2023.10.18 |
백년전쟁 1337~1453 (비보 - 1435~1450 1) (1) | 2023.10.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