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1337~1453' 이전 목록
*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 - 1 2
*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 1 2 3 4 5
*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 1 2 3
* 백년전쟁 1337~1453 (현명왕 샤를) - 1 2 3 4
* 백년전쟁 1337~1453 (잃어버린 평화) - 1 2
* 백년전쟁 1337~1453 (잉글랜드의 기회 - 1399~1413) - 1
* 백년전쟁 1337~1453 (헨리5세와 아쟁쿠르 전투 - 1413~1422) - 1 2 3 4 5
* 백년전쟁 1337~1453 (프랑스 섭정 베드퍼드 공작 - 1422~1429) - 1 2 3 4 5
* 백년전쟁 1337~1453 (오를레앙의 마녀 - 1429~1435) - 1 2 3 4
* 백년전쟁 1337~1453 (비보 - 1435~1450) - 1
1440년, 아쟁쿠르 전투 이후 줄곧 잉글랜드에 포로로 억류되어 있었던 오를레앙 공작이 풀려났다. 헨리 5세는 베드퍼드에게 오를레앙 공작이 공을 세울 수 없도록 절대 그를 풀어주지 말라고 했었다.
글러스터도 그를 석방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는데, 샤를 7세가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를레앙이 샤를의 매우 유능한 섭정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보퍼트는 오를레앙이 양국 간의 화평에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를레앙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비했고, 그는 자신의 성에서 시짓기에 전념하였다.
1439년 4월, 워릭이 사망했다. 1440년 7월에 요크 공작이 대리 사령관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1441년, 샤를 국왕은 파리에 위협적인 퐁투아즈를 포위 공격하였다. 요크와 톨벗은 3,000명의 군사로 구원에 성공했으나, 톨벗이 노르망디로 돌아간 후, 샤를과 그의 포술 장인 뷔로는 다시 포위 공격을 재개해 결국 퐁투아즈는 함락되었다. 퐁투아즈의 함락으로 일드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잉글랜드 요새가 사라졌다.
1442년 여름, 샤를 국왕은 기옌을 침공했다. 그는 여러 도시를 함락했지만, 보르도를 함락시키진 못했다. 톨벗은 2,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북부 공국(기옌)에 파견되었으나 보르도는 스스로 방어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1443년 4월, 보퍼트 주교는 요크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조카인 서머싯 공작 존을 프랑스와 기옌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서머싯은 7,000명의 군사를 이끌어 셰르부르에 상륙하여 슈보시를 진행하며 브르타뉴로 진입했다. 거기서 그는 브르타뉴의 도시 게르슈를 점령했으나 브르타뉴 공작에게 돈을 받고 도시를 다시 돌려주었다. 결국 아무 성과없이 돌아온 서머싯은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궁정에서 쫓겨났다.
1444년, 연로한 보퍼트는 정계를 은퇴했으나 그의 당파는 여전히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서퍽 백작의 정권은 부패하고 무능했으며 그와 그의 탐욕스런 동료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많은 재산을 갈취하였다. 다만 그는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싸운 뒤 이제 잉글랜드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프랑스와 화평을 맺어야 하고 노르망디와 기옌만 유지해도 행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444년 초, 서퍽은 사절단을 이끌고 투르에서 프랑스와 회담을 가졌다. 프랑스 측은 어떤 것도 양보를 할 생각이 없었고, 절박했던 그는 2년간 휴전하는 대가로 멘을 할양하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이 조항을 공개할 용기가 없어 멘 할양은 비밀에 부쳐졌다. 추가로 그는 헨리 국왕을 샤를 국왕의 조카인 앙주의 마르그리트와 약혼시켰다.
투르 휴전협정 소식은 잉글랜드 전역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나 프랑스에 있는 잉글랜드인들인 크게 환호했다. 1419년 이후로 적대 행위가 중단된 것은 처음이었다.
1445년 헨리 6세와 앙주의 마르그리트가 결혼했다. 이 외국인 왕비는 처음부터 미움을 샀는데 우선 그는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퍽을 지지하고 글로스터 공작을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는 유약한 남편을 구워삶아 서퍽을 지지하게 만들었고 서퍽은 1448년 공작이 되었다.
그녀는 멘 할양의 약속을 지키라고 서퍽은 압박했고 서퍽의 밀약 소식은 결국 새어나가 잉글랜드 인들은 격분케 하였다. 1445년 말 헨리 국왕은 이듬해 4월까지 멘을 넘겨주겠다고 프랑스에 약속했고 휴전은 1447년 4월까지 연장되었다.
※ 본 포스트는 책 '백년전쟁 1337~1453'를 읽고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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