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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중세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1) 1340년 봄, 에드워드 국왕은 헨트(Gent)에서 돌아오자마자 의회를 소집하고 의회에 추가적인 세금을 요구했다. 의회는 증세에 불만을 들어내면서도 마지못해 2년 동안 '구일조세'(모든 농장에서 아홉째 곡식 단과 아홉째 양모와 양을, 모든 도시민의 재산에서 아홉째 것을 세금으로 거둠)에 동의했다. 에드워드 국왕은 필리프에 맞서기 위해 증원군을 모으고 그들을 실어갈 함대를 서퍽(Suffolk) 해안에 집결시켰다. 그는 헨트로 돌아가는 길에 슬라위스(Sluys)에서 프랑스 함대를 맞을 계획이었다. 이때 프랑스의 함대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이 함대에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맹방인 카스티야(Castilla)와 베테랑 선장 '바르바네라(Barbanera)'가 이끄는 제노바의 선박들도 포함되어.. 2022. 2. 8.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2) 이전 편: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1) (tistory.com) 스코틀랜드 국왕 데이비드 2세의 프랑스 망명으로 잉글랜드-프랑스 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교황 베네딕트 12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휴전을 잠시나마 성사시켰지만(1335년 11월), 에드워드 국왕과 필리프 국왕을 화해시킬 순 없었고, 함께 십자군 원정을 떠나기로 했던 이들의 약속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1336년 3월) 몇 주 후 십자군 원정을 떠나기로 되어 있던 프랑스 함대는 마르세유에서 노르망디의 항구로 이동하였다. 함대 자체는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프랑스 사략선들이 영국 해협과 비스케이만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잉글랜드의 전쟁 준비 프랑스 함대가 노르망디로 이동한 후, 노팅엄에 모인 대평의회(Gr..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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