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1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5)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1)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3)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4) 에드워드가 칼레를 점령한 것은 단지 크레시-칼레 전역을 획득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칼레는 잉글랜드가 프랑스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물자가 드나드는 항구이자 교두보였다. 또한 잉글랜드의 더비 백작은 필리프 6세의 아들인 노르망디 공작에 의해 에귀용에서 포위되어 있었으나, 크레시 전투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 노르망디 백작은 포위를 풀고 루아르강 북부로 이동하였다. 한편 필리프가 칼레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브르타뉴에서 전해온 잉글랜드군의 또 다른 승전보 때문일지도 모른다. 1347년 토머스 대그워스 경이 블루아의 샤를.. 2022. 4. 3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