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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티에3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4) '백년전쟁 1337~1453' 이전 목록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1)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1)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3)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4)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5)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1)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2)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3) 푸아티에 전투에서 패하고 국왕이 사로잡힌 프랑스는 대혼란에 빠졌다. 아직 현명왕으로서 재능을 드러내기 전인 열여덟 살의 젊은 왕세자 샤를에게는 이 상황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바.. 2022. 6. 8.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3) '백년전쟁 1337~1453' 이전 목록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1)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1)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3)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4)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5)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1)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2) 흑태자는 어떻게든 전투를 피하고 싶었지만, 남쪽으로의 퇴로는 미오송 강으로 막혀있었고, 강을 무리하려 건너려 했다가는 적의 습격을 받아 전멸될 위험이 있었다. 결국 그는 유능한 베테랑 존 챈도스 경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본진을 지휘하면.. 2022. 6. 5.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2)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1) 백년전쟁 1337~1453 (전쟁의 서막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1)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2)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3)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4) 백년전쟁 1337~1453 (크레시 전투 5) 백년전쟁 1337~1453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1) 재무상 윌리엄 에딩턴을 통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즈음, 잉글랜드는 나바르의 국왕 악인왕(Charles the Bad) 샤를 2세를 우군으로 맞이하였다. 그는 나바르 왕국의 군주이면서, 노르망디에 여러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 인근에도 부유한 영지를 가지고 있어 오히려 에드워드 3세보다도 프랑스 왕위를 자격이 충분.. 2022.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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