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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영화, 음악, 게임 등)/영화 드라마

[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The King) - 줄거리, 아쟁쿠르 전투의 고증과 결말

by The Raven 2020. 9. 28.

개요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친 백년전쟁 기간 중 잉글랜드의 왕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헨리 5세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기 전, 왕자 시절의 모습부터 즉위 후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전체적인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를 각색하였습니다.

간단한 줄거리

헨리 4세의 장자이지만, 아버지부터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 한채 여흥에 빠져 살던 할(헨리 5세)는 어느 날 아버지의 부름을 받습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헨리 4세가 국내외로 여러 세력과 척을 둔 탓에 심각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었고, 헨리 4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분열은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흥에 빠져 살던 왕자 시절 헨리 5세(할)

그러던 와중 퍼시 가문이 헨리 4세에 반기를 들자 할의 동생인 토머스는 이들을 집압하기 위해 전투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할은 백성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헨리 (핫스퍼) 퍼시에서 1:1 결투를 신청합니다.

참고로 훗날 이 인물, 핫스퍼 퍼시의 후손은 북런던 토트넘 지역 축구팀의 경기장 인근 토지의 소유주가 되는데, 그의 별명을 따서 이 축구팀의 이름이 바로 토트넘 핫스퍼 FC가 됩니다.

결국 할의 활약으로 퍼시의 가문의 반란은 정리되었으나 토머스는 다른 반란 세력을 진압하다 전사하고 맙니다. 뒤이어 헨리 4세 마저 세상을 떠나자 할은 드디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됩니다.

그 후 프랑스의 계속된 도발과 암살 시도를 계기로 헨리 5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넙니다.

먼저 항구 도시 아르플뢰르(Harfleur)를 함락시킨 잉글랜드 군은 계속 진격해 나가지만, 병영내 전염병이 창궐하고 물자 부족에 시달리면서 급기야 철군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병력을 끌어 모은 프랑스의 대군이 서서히 접근해옴에 따라 아쟁쿠르 지역에서 프랑스와의 일전을 준비하게 되는데...

아쟁쿠르 전투

** 스포일러 주의 ** 
이 장의 내용은 영화 '더 킹: 헨리 5세'에서 표현된 아쟁쿠르 전투의 전개와 결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스포...)

헨리 5세의 잉글랜드 군과 프랑스군과의 전쟁의 백미는 역시나 아쟁쿠르 전투입니다. 
비록 아르플뢰르를 구원하진 못 했지만, 프랑스군은 잉글랜드 군을 추격하면서 병력을 계속 집결시키고 있었던 반면, 잉글랜드 군은 강행군에 물자 부족, 전염병 등으로 병력이 계속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헨리 5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프랑스군의 병력이 더욱 늘어날 것을 염려하여 칼레로 가기 전, 프랑스군을 격퇴하기로 결정하고 일전을 치를 전장을 물색하게 됩니다.

전장으로 낙점된 아쟁쿠르 지역은 양 옆이 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개활지였고,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엔 많은 비가 내려 땅은 진창이었습니다. 

아쟁쿠르 전투 당시 양군 배치 (출처: thehistoryofengland.co.uk)

전투 당일, 프랑스군은 장비를 잘 갖추고 있었고 사기가 충천하여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지만, 잉글랜드군은 상당수가 피로와 질병에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거지꼴

잉글랜드군은 중무장 부대를 중앙에 배치하였고, 장궁병들은 측면 숲 지대에(일부는 정중앙에) 배치하였습니다.

프랑스군도 중무장 부대를 중앙에 배치했으며, 그 수는 잉글랜드 군을 압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중무장 부대의 양 옆으로 기병대가 있었으며 석궁병은 부대 후위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양 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전투는 잉글랜드군의 도발로 시작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존 팔스타프 경이 잉글랜드군의 선발대미끼가 되어 프랑스군의 돌격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잉글랜드 군의 중앙 부대가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자 프랑스군 선발대는 참지 못하고 진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프랑스군의 기병대가 일부 장궁병의 화살에 피해를 보았으나 나머지는 그대로 잉글랜드군에 기병 돌격을 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와 같은 기병 돌격은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프랑스군은 화살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장갑을 한 상태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서 잉글랜드 군에 접근하였습니다. 

장갑의 무게도 문제였지만, 중장갑을 한 채 진흙밭을 지나 잉글랜드군에 접근해야 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잉글랜드 군 전열에 도달했을 땐 이미 제대로 된 전투가 어려울 만큼 지친 상태였습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장갑을 한 잉글랜드군은 진흙탕에서 허우적 되는 프랑스군을 도륙하기 시작했고, 프랑스군은 수적 우위만 믿고 무질서하게 병력을 밀어 넣기만 하면서 프랑스군 진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됩니다.

영화에서도 진흙탕 속에서 양 군이 뒤엉켜 처절하게 싸우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양 측이 대등한 전투를 벌였다기 보다는 잉글랜드군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결국, 잉글랜드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하였고 프랑스군은 사령관을 포함한 대다수의 기사와 수천 명(기록에 따라서 만 명 이상)의 병력을 잃게 됩니다.

소감

'더 킹: 헨리 5세'는 중세 유럽, 그중에서도 백년전쟁에 일어나던 시기의 유럽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영화라 생각됩니다.

스코틀랜드와의 분쟁, 귀족들의 반란으로 어수선한 잉글랜드의 내부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전투 장면에 있어서도 (비록 실제 역사와는 다소 전개가 다르지만) 아쟁쿠르 전투에 대해서도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John Gilbert  –  The Morning of the Battle of Agincourt  (1884),  Guildhall Art Gallery

또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 4막 3장에 등장하는 성 크리스틴 데이의 연설(St. Crispin's Day Speech)도 이 영화에서 등장합니다. 

다만, 헨리 5세가 영화의 주인공이다보니 프랑스의 루이 왕세자는 상대적으로 잔인하고 오만한 인물로 묘사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시계 방향으로) 헨리 5세 - 존 팔스타프 - 카트린 공주 - 루이

주인공 '헨리 5세'는 티모시 샬라메가 분하였고, 할이 왕위에 즉위하기 전부터 그와 어울리며 아쟁쿠르 전투에서도 맹활약을 벌인 '존 팔스타프' 역은 조엘 에저튼이 맡았습니다.

참고로 존 팔스타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인데, 원작 희곡에서는 할이 왕으로 즉위한 후 완전히 잊혀져 쓸쓸한 최후를 맞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 외 로버트 패틴슨이 프랑스의 왕세자 루이역으로 출연하였고, 숀 해리스는 헨리 5세를 보좌하는 잉글랜드의 대법관 역으로 등장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가 잉글랜드 왕 역할을 맡고 영국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이 프랑스의 왕세자인 루이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카트린 공주 역으로 조니 뎁과 바네사 파라디의 딸인 릴리 로즈 뎁도 출연합니다. 

백년전쟁을 배경으로 한 역사 영화이면서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기반한 영화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 및 희곡과의 차이점을 살펴보면서 영화를 감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헨리 5세의 초상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우리는 소수다. 소수여서 행복한 우리는 한 형재들이다. 

- 아쟁쿠르 전투 전 헨리 5세가 병사들에게 했던 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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