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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음, 마음 챙김/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마음 챙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제가 한 선택에 불평불만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요?

by The Raven 2021. 12. 29.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요약해 봤습니다. 

아래 영상은 자신이 하는 일에 갈피를 못 잡고, 자신의 선택에 불평불만이 많은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설입니다. 용기를 내어 질문한 질문자와 지혜로운 법문을 들려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질문자: 저는 지금 대학교 졸업반인데, 해야 할 일은 귀찮거나 하기 싫어서 하지 못하면서, 하긴 해야 하니까 계속 생각나고 불안합니다.

이게 안 해서 못 하는 건지 못 해서 안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격지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선택한 게 별로 없어서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쩔 수 없이 선택했을 때는 기쁨보다는 후회나 불평불만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지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스님: 자기(질문자)는 어떻게 하면 건강할 수 있을까?

질문자: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운동하면... 긍정적인 사고도 있으면...

스님: 그럼 건강하다는 게 뭘까?

100m을 몇 초에 달리고 턱걸이를 몇 개 하고, 역기는 몇 kg을 들고... 이런 걸로 건강하는 것을 체크할 수 있나?

건강하다는 것은 안 아픈 것을 말한다.

사람이 키가 크든 작든, 어린 애든 어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그건 관계없고, 무엇이 건강하거다? 안 아픈 게 건강한 거다. 

그럼 어떤게 행복한 걸까? 

즐거운 게 행복한 걸까? 즐거움은 반드시 그만큼의 불행함이 따라온다. 둘은 같이 붙어 다닌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나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를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즐거워질까를 묻고 있는 거다. 

마약 하면 즐거워지겠지. 술 마시면 즐거워지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이다? 안 괴로우면 행복한 거다. 

다시 말하면, 육체적인 병을 아픔이라고 한다면, 정신적인 병, 정신적인 아픔을 괴로움이라고 한다. 

이것은 정신이 병들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여러 종류(부류)가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부류, 슬퍼하는 부류, 외로워하는 고독한 부류. 

이런 것은 하느님을 안 믿어서, 전생에 죄를 지어서, 사주나 궁합 때문이 아니고 정신에 고장이 생겨서 그런 거다.

마찬가지로 내가 몸이 아픈 것은 벌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고 몸의 어딘가가 고장 나서 그런 거다.

옛날엔 신의 벌을 받아서 그런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선 몸의 어딘가 고장 나서 그런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괴롭다는 것은 정신의 어느 부분이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그럼 어느 부분에서 고장이 난 것인가? 바로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것욕심때문에 고장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고, 그것만 고치면 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즐겁게 산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되고.

뜻대로 안 돼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뜻대로 안 되면 다시 하면 되지.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 

관점을 그렇게 가지면 별 거 아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약간 과대평가하고 있다.

현실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100이라면, 자기는 머릿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200으로 평가하고 있다. 

200이 되고 싶은 거지. 그래서 머릿 속의 이상의 관점으로 볼 때 현실의 자신은 너무 부족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는 거다. 

그래서 자학 증세가 생기는 거지. 

자연속에서 개나 고양이는 자학 증세가 있을까? 거의 없다. 

왜냐하면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를 만들지 않으니까. 

그럼 100을 끌어올려서 200을 만들 거냐?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된다. 

우리는 모두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때로는 그런 노력이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괴로움에서는 벗어나지 못 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200을 평가한 자기를 버려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100이니 100에 맞게 사는 거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능력도 제한되어 있다. 그것을 키울 수는 있지만 우리의 욕심처럼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커지진 않는다. 

스님은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항상 도전을 한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를 잡지만, 그것때문에 괴로워하진 않는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할 뿐이지. 

100가지를 시도하면 99가지를 실패한다. 하지만, 10년을 놓고 보면 목표에 상당히 가까워지게 된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래서 자학이라는 것이 없다. 

남과 비교를 하면 할수록 자학을 하게 된다.

지금의 나를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너무 큰 이상으로 자신을 판단해서 괴로운 거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나이가 든 사람은 문제가 있을까? 나이가 든 사람은 그 나이만큼 살아낸 게 대성공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모든 다람쥐들도 자기 나름대로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만이 자신을 실패했다고 생각할까?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다른 동물보다) 인간의 능력이 제일 뛰어나지 않은가? 그런데 자신을 학대하는 건 인간들 밖에 없다. 

그 원인이 욕심이다. 

결혼한 것만해도 성공이다. 아이가 건강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만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대학을 못 간 사람도 있는데, 대학원을 간 사람이 불행해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욕심을 내면 끝이 없다.

그래서 자신을 학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왜 넘어졌냐고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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