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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와 포클랜드 전쟁

by The Raven 2009.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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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에 기대어 축구는 종종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한국과 일본처럼 역사적으로 사이가 안 좋을 수 밖에 없는 나라들은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한국과 일본 외에 사이가 안 좋은 나라들로는 독일과 네덜란드(또는 폴란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등이  대표적이다.

본 포스트에서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틀어진 원인인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포클랜드 전쟁에 대해선 대강의 내용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다.




일단 포클랜드 전쟁(Falkands War)을 말하기 전에, 전쟁의 발단이 된 포클랜드 섬(Falkand Islands)에 대한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이 섬은 아르헨티나에선 '말비나스'(스페인명: Malvinas) 섬으로 불리며 남아메리카 서남단에 위치한 전라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1690년 영국인 존 스트롱(John Strong)이 최초 상륙한 이례 1764년 프랑스가 정착촌을 세웠으며, 1766년엔 그 사실을 모른채 영국이 정착촌을 세웠다가 1774년에 떠났고, 프랑스로부터 정착촌을 물려받은 에스파냐 역시 1811년 경제적 이유로 이 섬을 떠났다. 그 후 1816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가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1831년 미국 포경선을 나포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에 의해 섬 내 유일한 정착촌이 파괴된 후, 1833년 영국이 이 섬을 접수하였다. 그 후 150여년동안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섬을 사이에 두고 아웅다웅하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무력으로 이 섬을 점령하면서 발발한게 포클랜드 전쟁이다.

사실 포클랜드 전쟁은 양국의 영유권 분쟁보다는 당시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 (Leopoldo Galtieri)의 군부독재 정권이 인플레이션, 실업, 반독재 투쟁등과 같은 정권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일어났다고 봐야한다(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처럼). 또한 군부독재 정권은 영국이 남대서양 끝의 작은 섬에는 관심을 가지진 않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즉각 대응에 나섰고 1982년 4월 2일에 시작된 전쟁은 결국 74일 간의 교전 끝에 영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의 패배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은 힘을 잃어 아르헨티나는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반대로 영국에선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이 국민들의 지지를 더욱 확고히 얻어 이듬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Leopoldo Galtieri)
License: public domain


Maggy T.
Maggy T. by quixotic54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Margaert Thatcher)

여기까지가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간략한 소개고, 축구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그 해 포클랜드 전쟁이 끝난 직후, 1982년 6월 스페인에서는 제12회 스페인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양국 모두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조 별 예선에서 잉글랜드는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쿠웨이트를 모두 꺽어 3전 전승으로 2차 리그에 진출하였고, 아르헨티나 역시도 벨기에에 0:1로 졌으나, 헝가리, 엘살바도르를 연파하며 2차 리그에 오른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2차 리그에서 이탈리아, 브라질에게 연패하며 탈락하였으며, 생애 첫 월드컵에 출전한 마라도나는 브라질 전에서 폭력을 휘둘려 퇴장당한다. 당시 아르헨티나 팀 상황에 대해선 1996년 제작된 BBC 다큐멘터리 '마라도나:천재인가 악한인가'에서 잘 알 수 있는데, 당시 BBC와 인터뷰한 마라도나의 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정부 발표에 따라 자기들이 포클랜드 전쟁의 승전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각 국 기자들의 거듭되는 질문에 진실을 알게 되었고, 억장이 무너져 도저히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벨기에와의 경기 전날 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숙소에 틀어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마라도나 첫 월드컵 도전은 아쉽게 끝나고, 그로부터 4년 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다시 월드컵에 도전한다. 이탈리아, 불가리아, 한국과 한 조에 속한 아르헨티나는 2승 1무로 조별 예선을 통과하고 16강전에 진출한다(한국은 불가리아와는 무승부,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에겐 져 16강 진출에 실패한다.).

 

16강전에서 우루과이를 1:0으로 제압한 아르헨티나는 드디어 8강전에서 '앙숙' 잉글랜드를 만난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부터 언론과 팬들로부터 "포클랜드 전쟁으로 잃어버린 조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라"라는 염원을 안고 온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그야말로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골을 성공시킨다(아래 동영상 참고).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오심: 일명 "신의 손" 사건


결국 이 두 골을 발판으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는 2:1로 누르고 4강에 오르며, 4강에서는 벨기에를 2:0으로 누르고(두 골 다 마라도나가 기록)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에서 만난 서독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는데, 당시 남미 팀을 상대로 한 서독의 역대 월드컵 전적은 8승2무로 단 한 번도 진적이 없었다. 또한 당시 서독은 82, 86년 2회 연속 월드컵 결승에 오를 정도로 강팀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3:2 아르헨티나 승. 당시 서독의 콜(Kohl) 수상은 서독의 결승전 응원을 위해 고국에서 멕시코까지 날아왔으나 모국의 패배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아르헨티나의 우승 소식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우승일 7월 1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으며, 마라도나는 축구신동에서 축구영웅으로 등극한다...


한국과 일본 간의 독도 분쟁처럼 아직도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포클랜드(말비나스) 섬을 사이에 두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다 양국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내용도 다소 있었는데, 그 중 하나로 2000년에 아르헨티나인 감독이 제작한 "Fuckland"란 영화는 그 내용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다. 영화 내용인즉 포클랜드로 들어온 아르헨티나인이 결혼 적령기의 영국 여성에게 접근해 결혼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다음 세대에는 그 섬을 아르헨티나 인이 점령하도록 노린다는 내용이다.^^ 혹시 관심있으면 찾아보시기 바란다.

출처: 위키피디아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취미는 축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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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2020년 11월 27일에 추가한 글입니다. **

2020년 11월 25일, 디에고 마라도나가 향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선수 시절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그로 인해 늘 상대 수비수로부터 온갖 종류의 반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는 감독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마약과 탈세 등 온갖 이슈를 만들어 내며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축구라는 스포츠가 사라지지 않은 한, 그는 축구 역사의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억될 것입니다. 

RIP 

Diego Maradona (1960-2020)

황금의 소년' 디에고 마라도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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