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점자 도서 입력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점자 도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도서에 있는 텍스트를 워드프로세서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책을 하나 정하고 책에 있는 모든 텍스트(제목, 목차, 본문, 주석)를 워드에 옮겨야 하는 작업인데 책 한 권을 읽고 필사한다는 마음으로 점심시간이나 잠자기 전에 틈틈히 옮겨 적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책은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입니다. 책의 분량은 300페이지가 조금 넘습니다. 처음 입력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힘들어서 끝까지 완결을 못 지으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벌써 70페이지 정도 완료했습니다.
점자 책을 만들 때는 대개 스캐너를 통해 책을 스캔한 후 스캔한 자료에서 텍스트를 추출하는데 봉사자들이 바로 이 스캐너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일반 도서에 있는 텍스트를 점자 도서용 텍스트로 옮길 때는 특별한 문법을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문단의 시작 부분에는 빈 칸을 두 개 띄어야 하며 페이지가 바뀌는 부분에서는 '@@p페이지'와 같은 식별자를 넣어 페이지가 바뀌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기재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한자는 모두 한글로 변환해야 하고 점자 도서에서 사용할 수 없는 유니코드 등의 특수문자는 적절한 기호로 바꿔야 합니다.
점자 도서 입력 봉사를 하면서 새삼의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일 년에 약 6만 권 이상의 책이 출판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점자도서로 만들어지는 책은 전체의 10% 이하라고 합니다. 그나마 점자 도서로 만들어진 책에는 그림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점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림이나 삽화는 어쩔 수 없이 '[그림] 그림 제목', '[그림 끝]' 이렇게 갈무리해야 하는데 책의 내용을 강조하거나 특별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들어간 이미지를 못 본채 오로지 텍스트로만 책을 읽어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참여한 활동으로 시각장애인 분들이 좀 더 많은 좋은 책을 접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 점자 도서 제작 과정
점자 도서는 아래의 과정을 거쳐 진행됩니다.
1. 도서 스캔작업
저작권 문제로 출판사에서 원본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판된 책을 낱장으로 잘라서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스캔을 진행합니다.
2. 교열작업
스캔한 텍스트에는 유니코드가 많고 오타도 많아 1, 2차에 걸쳐 교열 작업을 진행합니다. 점자도서 제작에 사용하는 스캔 프로그램은 외산 프로그램이라 한글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정확도가 최대 90%정도 라고 하며 깨진 글자도 많아서 일일히 수작업으로 교열을 봅니다.
3. 점역작업
묵자(우리가 보는 글자) 자료를 점자 자료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 점역사라고 하는데요, 일반적인 소설 점역은 일주일, 전문적인 내용이 담긴 전공서적은 한 달까지도 걸린다고 합니다. 참고로 묵자와 점자는 표기 방식이 다른데, 묵자는 모아쓰기를 하는 반면 점자는 풀어쓰기로 표기됩니다. 그래서 묵자로 된 책 한 권이 점자로 점역했을 때 최소 2권에서 10권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4. 교정작업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를 통해 교정을 진행합니다. 점역된 파일을 한소네에 넣으면 한소네에서 점자로 나타나는데 이 점자를 읽고 수정 또는 검수를 진행합니다.
5. 점자 프린터를 통해 출력 및 제본
교정된 최종 자료를 점자 프린터를 통해 출력하고 제본하여 점자 도서를 완성합니다.
아래 영상에서 위의 점자 도서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상으로 담아본 점자도서 제작과정 (youtube.com)
'🤸♂️ 일상 기록 > 독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0) | 2024.08.23 |
---|---|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J. D. 샐린저 (0) | 2024.08.20 |
[독서기록] 돈키호테 1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0) | 2024.05.09 |
[책 리뷰] 내 아이를 위한 30일 인문학 글쓰기의 기적 (0) | 2024.05.03 |
[북 리뷰] 마케터의 글쓰기 (0) | 2024.03.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