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부주장이자 수비의 핵인 제이미 캐러거(Jamie Carragher)는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rd)와 같이 리버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 왔고, 불같은 성격으로 자주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경기 출장 횟수를 보이며 수비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팀의 기둥으로서 동료 선수와 코칭 스탭 및 팬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오늘은 이 블로그의 이름이기도 하며 Mr. Liverpool이라 불리는 제이미 캐러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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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제이미" 캐러거 (James "Jamie" Carragher, 1978년 1월 28일생)은 리버풀에서 수비수로 뛰고 있는 잉글랜드 축구선수이다. 그는 현재 리버풀에서 부주장을 맡고 있으며 한 클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뛴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2008년 1월 리버풀에서의 500번째 출장 기록을 작성하였다.
캐러거는 원-클럽 맨(one-club man,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네요.)이다. 그는 리버풀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으며 1996-97 시즌에 프로 선수가 되었다. 2001년, 리버풀이 FA 컵, 리그 컵, UEFA 컵을 모두 거머쥐는 트레블을 기록하면서 캐러거도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초기에 그는 풀백으로 뛰었으나 2004년 라파엘 베네테즈 감독이 부임하면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고, 그 해 팀은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우승하면서 그도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하였다. 다음 시즌에 팀은 FA 컵을 거머쥐었고 그는 'PFA Team of the year'에 선정되었다. (PFA Team of the year는 프리미어 리그, 챔피온쉽, 리그 1, 리그 2 별로 해마다 각 포지션 별 베스트 일레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PFA는 Professional Footballer's Association의 약자임) 2007년에 캐러거는 리버풀에서 유럽 대회 최다 출장 횟수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캐러거는 21세 이하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출장 횟수를 가졌으며 1999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유로2004,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뛰었던 그는 수비수로서 대표팀 잔류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2007년 대표팀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국가대표팀에서 그는 총 34회의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8년 그는 "Carra"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하였다.
클럽 경력
머시사이드, 부틀 출생의 캐러거는 어린 시절 Lilleshall에 위치한 former FA 스쿨에서 축구에 눈을 떴으며, 1996년 친구 마이클 오웬과 함께 리버풀 유스팀을 FA 유스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6년 10월 그는 당시 로이 에반스(Roy Evans)가 이끌던 리버풀과 정식 계약을 맺었으며 미들스브로(Middlesbrough)와의 Coca Cola 컵 준결승전에서 교체 선수 명단에 오르면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웨스트 햄(West Ham)과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 명단에 오르면서 프리미어쉽 데뷔도 하게 되었다. 다음 경기 아스톤 빌라(Aston Villa)전에서 그는 데뷔 첫 번째 골을 기록하였고 팀은 3-0으로 승리하면서 잠깐동안 리그 1위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결국 그 해 리버풀은 리그 4위를 기록하였다. 1997-98 시즌에 캐러거는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되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20경기에 출전하였다. 다음 시즌에서도 그는 리그에서 네 경기를 제외한 모두 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케빈 키건(Kavin Keegan)은 그에게 full international cap를 수여하였다. (Cap에 대해선 차후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센터 백, 레프트 백, 라이트 백, 수비형 미드필드를 넘나드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였다. 1999-2000 시즌 그는 주로 라이트 백에서 뛰었는데, 그에게 있어 가장 암울한 시즌이었다. 그는 홈에서 벌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와의 경기에서 두 번의 자책골을 기록하였다. 2000-01 시즌에 그는 레프트 백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에 그는 성인 무대에서의 첫 번째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 FA 컵, UEFA 컵, 리그 컵, 커뮤니티 쉴드(Community Shield), 유로피언 슈퍼 컵(European Super Cup).
2002년 1월 아스날(Arsenal)과의 FA 컵 경기로 인해 캐러거는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동전을 던진 관중을 향해 다시 동전을 던진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레드 카드를 받았고 축구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2002년에서 2004년까지 캐러거는 두 번의 심각한 부상에 시달렸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그는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2002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었다. 2003-04 시즌에는 리그 5라운드 이우드 파크(Ewood Park)에서 있었던 블랙번(Blackburn)과의 경기에서 루카스 닐(Lucas Neill)의 태클로 인해 다리 골절상을 입고 상당 기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이 기간 동안 그의 공백은 스티브 피넌(Steve Finnan)과 존 아르네 리세(John Arne Riise)가 메꿨다. 이후 그는 성공적으로 부상에서 회복하여 돌아왔으며 2004년 전반기에 24 경기 출전하였다.
2004-05 시즌은 그의 경력에 있어서 중요한 시즌이었다. 새로운 감독 라파엘 베네테즈(Rafael Benitez)는 그의 포지션을 센터 백으로 바꿨고 사미 히피아(Sami Hyypia)와 함께 중앙 수비를 맡게 된 그는 56 경기에 출전하였다.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다가 이 때부터 센터 백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후 캐러거는 힘이 좋고, 위치 선정이 뛰어난 수비수로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동료 히피아와 함께 중앙 수비를 책임져 소속팀 리버풀을 2004-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캐러거는 시즌 종료 후 올해의 리버풀 선수로 선정되었고, CSKA 모스크바와의 2005 UEFA 슈퍼 컵에서 주장 완장차고 경기에 임했다.
2006년 5월 13일, 캐러거는 웨스트 햄과의 FA 컵 결승전에 출전하였다. 이는 그의 10번째 결승전 출전이었고 클럽 내에서 가장 많은 출전 횟수에 해당한다. 그는 이 경기에서 전반 21분 자책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우승을 차지하였다. (90분간 양팀의 스코어는 3-3이었고 승부차기에서 3-1로 리버풀이 승리)
2006년 12월 9일 안필드(Anfield)에서 있었던 풀햄(Fulham)과의 경기에서 캐러거는 1999년 1월 이후 처음으로 리그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는 자신과 함께 중앙 수비를 맡고 있는 동료 다니엘 아게르(Daniel Agger)가 코너에서 올려준 공을 슬라이딩하여 반대 편 포스트에 있던 풀햄 골키퍼 얀 라스투브카(Jan Lastuvka)의 발 밑으로 밀어넣었다. 이 골은 리버풀에서의 그의 네 번째 골이었다.
2007년 5월 1일에 있었던 첼시(Chelsea)와의 챔피언스 리그(Champions League) 준결승 두 번째 경기에서 캐러거는 클럽 내에서 유럽 대회 최다 출전 기록을 수립하였다. 그의 90번째 유럽 대회 출장 기록은 1964년에서 1978년까지 활동하면서 이안 캘러건(Ian Callaghan)이 세운 89회의 유럽 대회 출전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캐러거는 팬들에 의해 2006-07 시즌 그 해의 리버풀 선수로 선정되었고 팀과의 계약을 2011년까지 연장하였다. 같은 해 그는 대표팀에서 은퇴하였는데, 스티브 맥클라렌(Steve McClaren) 감독 하에서 그는 많은 출장 횟수를 갖지 못하였다.
2007-08 시즌 캐러거는 500번째 출장 기록을 수립하였다. 500번째 출장 경기에서 그는 주장을 맡았고 현재 그는 리버풀 역사상 9번째로 출장 횟수가 많은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2009년 5월 18일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West Bromwich Albion)과의 경기에서 그는 경기 중 동료 수비수 알바로 아르벨로아(Alvaro Arbeloa)와 몸싸움을 벌였고 사비 알론소(Xavi Alonso), 다니엘 아게르 등의 동료 선수들이 그들을 말렸다. 이에 대해 라파엘 베네테즈 감독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후에 그는 이 일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클린 시트(clean sheet, 골키퍼의 무실점 기록)를 유지하고 싶었고 올 해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페페(Pepe, 호세 레이나 골키퍼를 지칭)가 골든 글러브(Golden Glove, 해마다 리그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상)의 기회를 가졌으면 했다.”
개인사
2005년 캐러거는 사마타 야누스(Samatha Janus) 감독이 연출한 'Just 3'라는 밴드의 뮤직 비디오 'Stand Tall'에 출연하였다.
캐러거는 밴드 오아시스(Oasis)와 아틱 몽키(The Arctic Monkes)를 가장 좋아하며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비틀즈(The Beatles)의 ‘In My Life’이다. 그는 오아시스의 노엘(Noel)과 절친한 사이다.
캐러거는 리버풀 시내에 “Cafe Sport England Restaurant”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다.
캐러거는 어릴 적 소꿉친구 니콜라 하트(Nicola Hart)와 결혼하였으며 두 자녀 - 제임스(James)와 미아(Mia) - 가 있다.
캐러거는 위하수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배꼽이 없었다.
캐러거는 어린 시절 에버튼(Everton F.C.)를 응원하면서 자랐다.
그에 대한 많은 논란
2008년 2월 28일, 캐러거는 집 근처에서 폭행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경고 조치를 받았다. 소속팀 리버풀은 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2008년 9월 11일, 캐러거는 자신의 자서전 “Carra”가 출간하였다. 하지만 책이 채 출간되기도 전에 책의 일부 문구가 알려지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일례로 그는 책에서 그의 가까운 친구들이 호주 출신의 웨스트 햄 수비수 루카스 닐을 보복하가 위해 찾아 다니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는 그는 그 일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옛 동료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pson)이 웨스트 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캐러거는 톰슨에게 자신이 닐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캐러거는 톰슨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너에게 감사의 포옹을 하라고 닐에게 전해라. 그 자리에 네(톰슨)이 없었으면 닐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캐러거는 또한 자신의 수비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팀 동료 리고베르 송 (Rigobert Song)를 훈련 때 고의적으로 거친 태클을 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송은 미소를 띄우며 훈련장에 걸어 나왔지만, 한 시간 뒤 그는 얼굴을 찌푸린 채 절뚝거리며 있었다. 난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태클을 가했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잉글랜드 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자신의 형제들이 일자리를 잡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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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도 종종 치고 자살골도 종종 넣는 그지만, 언제나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않는 그는 진정한 미스터 리버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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