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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정비석 초한지 전5권 - 삼국지와 다른 고대 전쟁사의 매력

by The Raven 2024. 3. 26.

 

  • 저자: 정비석
  • 출판사: 범우사
  • 발행년도: 2003년
  • 분야: 역사 소설
  • 매체: 종이책

초한지는 전국시대 말부터 진나라의 통일과 멸망, 그 뒤로 이어지는 초한쟁패기를 살았던 영웅들의 이야기다.

중국 역사의 중요한 시대를 다루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지만 또 다른 역사 소설인 삼국지와 비교하면 극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비유하자면 삼국지연의보다 정사 삼국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삼국지에 비해 초한지가 재미없게 느껴졌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머리속에서 이미지화가 잘 안 된다. 삼국지는 이미 게임을 통해 주요 도시가 어디 붙어있고 장수들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선행 학습이 돼있지만 초한지에서는 함양이 어디고 팽성이 어디인지 장수들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나에게 처음 삼국지를 알게 해준 KOEI 삼국지2 (출처: 네이버 블로그 - Kun의 고전게임 공방)

인물 묘사에 있어서도 제갈량(학창의, 윤건, 백우선), 관우(붉은 얼굴, 긴 수염, 청룡언월도), 여포(방천화극, 더듬이?)등 주연급 장수의 외형 묘사에 공들인 삼국지에 비해 초한지의 장수들은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제갈량(좌)와 장량(우) - 왼쪽은 윤건과 부채만 봐도 제갈량임을 알 수 있다.

대결구도가 단조롭다. 삼국지는 위, 촉, 오 삼국 사이의 견제와 배신이 뒤섞이면서 입체적인 전개를 보여주지만 초한지는 두 국가간의 대결 구도가 단조로운 느낌이다. 오히려 한신이 제나라를 제압한 후 괴철의 천하삼분지계를 듣고 흔들리는 지점부터 긴장감이 높아졌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다. 연의는 소설적 재미를 위해 동남풍 기원 철야기도, 칠종칠금 같은 판타지스런 이벤트로 독자를 잡아끄는 반면 초한지는 담백하게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반대로 삼국지가 가지지 못한 초한지만의 매력도 여러 개 있다.

항우의 무쌍 판타지적인 요소가 거의 없지만 항우만은 예외이다. 특히 3만 초군으로 56만 한나라군을 섬멸한 팽성전투가 실제 역사임을 알게 되면 적벽대전 이상의 소름을 느끼게 된다. 코에이 삼국지에서 여포의 무력이 100으로 설정돼있는데 항우가 게임에 들어갔으면 무력은 대략 150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고사성어 맛집 금의환향, 다다익선, 사면초가, 토사구팽 등 많은 고사성어가 초한쟁패기에 나왔고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이들 고사성어의 유래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흥미로운 후반부 삼국지는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는 순간 사실상 소설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후 강유 vs 등애의 대결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 시점에 이미 유-관-장 트리오, 제갈량, 조조가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이야기의 텐션이 다소 떨어진다. 반면 초한지는 천하통일의 대과업이 완료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거 싶더니 한신, 영포의 숙청, 여황후와 척부인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은 현실에서 얼마나 있을까...?

 

초한지를 읽을 때 팁

중국의 고대 국가 및 도시의 위치를 잘 모른다면 옆에 지도를 놓고 읽자(인터넷 지도도 좋다). 한과 초 그밖의 세력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주요 전투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머리속에 그리려면 각 도시와 성(城)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게 좋다. 우선 전국칠웅의 세력도를 통해 각 세력의 배치를 파악하고 함양, 영양, 팽성 등의 주요 도시의 위치를 알아두면 이해가 쉽다. 

출처: 위키백과 (전국칠웅)

 

다 읽고 든 생각

  • 나관중은 장량 + 소하 + 한신를 한 인물로 합쳐 연의의 제갈량을 구현한 게 아닌가 싶다.
  • 여황후와 척부인 갈등 속에 아무도 신경 안 썼던 고황후 박씨의 아들(문제)이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사 새옹지마,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새삼 듬. (※ 초한지는 척부인이 끝나면서 소설이 끝나고 박씨에 대한 내용은 안 나온다.)

결국 초한쟁패기의 최후의 승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 화를 면한 장량과 고황후 박씨, 그리고 그의 아들 한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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